프레더릭 칼 프리스키
지베르니 화가촌에 자리 잡은 미국 인상주의자. 나뭇잎 사이로 부서지는 얼룩진 햇빛을 평생 좇았다.
프리스키는 1893년 시카고 만국박람회를 보고 화가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뉴욕 아트스튜던츠리그 시절에는 신문과 잡지에 만평을 팔아 생계를 댔다. 훗날 그는 그 일이 조금만 더 잘 풀렸다면 미술 공부를 접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1898년 프랑스로 건너간 뒤 돌아오지 않았다.
지베르니 화가촌에 자리 잡은 미국 인상주의자. 나뭇잎 사이로 부서지는 얼룩진 햇빛을 평생 좇았다.
프리스키는 1893년 시카고 만국박람회를 보고 화가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뉴욕 아트스튜던츠리그 시절에는 신문과 잡지에 만평을 팔아 생계를 댔다. 훗날 그는 그 일이 조금만 더 잘 풀렸다면 미술 공부를 접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1898년 프랑스로 건너간 뒤 돌아오지 않았다.